그리스도의 세례로 다시 태어납니다.

 교회를 다녔습니다. 진리에 목이 마르더군요. 지혜란 무엇인가. 참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제가 출석하던 목사님의 사목방향과 가톨릭의 사목방향이 흡사하다는 것 차치하고서라도... 

 교회를 바꿔볼까 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다니던 교회. 정말 참구원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재미없는 교횝니다. 평신도의 평균연령대가 50세 안팎이었죠. 이것도 얼라들 하고 청년(저를 포함한 둘) 나이로 좀 차감된 것입니다. 많이 어려웠죠.

 그래서 개신교회 내에서 읍내의 큰 교회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친한 친구들 대부분 읍내 교회 다녀서요.- 글쎄 그 친한 친구넘덜은 시골 교회 목사님의 농촌 사목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더군요. 가끔와서 보고 따라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으니까. -  아직 어리니까 사람보고 교회 간 것 같습니다. 그저 삼촌이 목회자니까. 아 우리 교회 살림 어려우니까. 가서 노력봉사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이 교회 출석의 8할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교회를 옮겨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또래가 많은 곳에 가서 같이 봉사하고 여러가지 배워서 시골에 있는 소속교회로 가서 베풀어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던 것을 보니, 신앙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생활적으로는 철이 조금 든 것 같다는 자부도 있었어요.

 일전에 원장수녀님과 면담을 했는데, 그제서야 생각이 듭니다. 사람보고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역설이 아닌가, 십자고상에 달리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나는 여태 교회 첨탑의 붉은 십자가를 따라다녔다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구원은 그 분과 나의 1:1 이라는 강한 메세지를 머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순명하지 않는 것도 아이러니였던 것 같구요. 제가 그랬으니까.

 반복되지 않는 "유일한" 생애에 구원의 희망을 품고 잠들기 위해 세례 받을까? 하는 어설픈 생각도 품어보았어요. 하지만 생애의 다른 시작점을 위해 현실을 도외시하고 그리스도의 "어려운 뜻"만 추종하는 것도 이성적인 입장에서는 "구식의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지 않았지요. 하지만 주님은 기다려 주신다는 것. 기다리시지만 당신 받들기를 강요하거나 구걸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된 것 같습니다.

 요즘 예비자교리 시간이 그 종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별말씀 안 계시지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12월 셋째주 정도에 세례를 받는다고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는 하나의 의식에 불과하죠. 유다 풍습의 정결례를 업그레이드한 것이죠. 예수님도 요르단강가에서 세례자라는 요한에게서 받으신 일종의 침례(물 속에 깊이 담는 방식)를 받으셨으니까. 그분의 세례는 사적인 생활에서 공적인 생활로 진입하기 위한 입문과정이죠. 우리도 세례의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의식에 불과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며 살기 위한 최초의 입문에 불과한 거죠. 세례로 다시 태어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만큼의 시작이라는 신부님 말씀이 가슴 깊이 새겨집니다.

 세례 받았었다의 과거형이 아니라 늙고 죽어 시쳇말로 관속에 들어갈 때까지 거듭나고 있다의 현재 진행형 신앙인이 되고자하는 저를 포함한 예비신자들을 위하여 사랑하는 식구들의 기도 부탁드립니다.^^

 

 +Shalom(평화)

by 白首狂夫 | 2006/11/05 01:21 | St. Aquinas 신앙생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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